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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조현병, 가족 돌봄, 판단의 한계)

hatiiiiin 2026. 8. 27. 22:14

목차


    다큐 영화를 좋아해서 찾아봤습니다. 근데 영화관을 나오면서 "재밌었다"는 말이 먼저 나왔는데, 그 말을 꺼낸 순간 스스로도 좀 당황했습니다. 조현병을 앓는 누나와 20년을 버텨온 가족의 이야기인데, 재밌다니.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던 제 모습을 돌아보면, 그 "재밌다"는 말이 결국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큐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보고 왔습니다.



    조현병과 25년 — 방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영화는 후진노 토모아키 감독이 캠코더 하나 들고 자기 가족을 찍기 시작한 2001년부터 무려 20년간의 기록입니다. 누나에게 조현병 증상이 처음 나타난 건 1983년, 의대를 꿈꾸던 24살 때였습니다. 조현병(Schizophrenia)이란 현실 인식 능력이 무너지면서 환청, 망상, 비논리적 사고 등이 나타나는 중증 정신질환입니다. 쉽게 말해 본인이 경험하는 세계와 실제 세계가 분리되는 병인데, 문제는 초기에 제대로 된 진단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부모님이 찾아간 의사는 '정상'이라는 진단을 내렸고, 그 한마디가 이후 25년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렸습니다. 누나는 보험을 임의로 해지하고 혼자 미국으로 훌쩍 떠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이상한 편지를 보내는 행동을 반복했고, 증상이 심각해지자 부모님은 누나를 집 안에 가두고 외부와 차단한 채 거의 1년 가까이 은둔 생활을 선택했습니다.

    처음 이 대목을 보면서 저도 그 답답함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 빨리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 생각 다음에 바로 이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80년대 일본에서 정신질환이란 어떤 낙인을 의미했는지. 당시 정신병원 입원이 환자에게 어떤 처우를 뜻했는지. 부모님은 의사 출신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정신과 병동이 어떤 곳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부모님 입장에서는 딸을 입원시키는 순간 짐승 이하의 취급을 받을 거라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딸을 버리지 않으려는 선택이 역설적으로 25년의 고립을 만들었을 가능성, 그걸 영화 안에서 마주치면서 단순히 '방치'라는 단어로 정리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이후 어머니가 치매를 겪다 돌아가시고, 감독은 아버지의 동의를 얻어 마침내 누나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킵니다. 그리고 불과 3개월의 치료만으로 누나는 대화가 가능해지고 일상생활을 회복할 정도로 상태가 크게 호전됩니다. 약물치료(Pharmacotherapy), 즉 항정신병약물을 통한 도파민 조절이 이 정도의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그 25년을 더욱 무겁게 되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약물치료란 조현병의 경우 뇌 내 도파민 과활성을 항정신병 약물로 안정시켜 증상을 완화하는 가장 기본적인 치료 접근을 의미합니다.

    • 1983년 누나의 조현병 첫 증상 발현 — 의사의 '정상' 진단으로 치료 시작되지 못함
    • 25년간 전문 치료 없이 가족 내에서만 돌봄 지속
    • 어머니 사망 후 정신병원 입원 — 3개월 만에 대화·일상생활 회복
    • 감독이 2001년부터 20년간 직접 촬영한 사적 다큐멘터리, OTT·DVD 공개 계획 없음
    요약: 25년간의 비치료는 단순한 방치가 아니라, 시대적 편견과 부모의 두려움이 맞물린 복잡한 선택의 결과였다.

     

    판단의 한계 — 나라면 잘했을까

    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경계했던 감정이 있습니다. "나였으면 저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입니다. 직접 겪어보니, 그 생각이 올라오는 순간 스스로가 굉장히 교만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고작 1시간 40분 동안 편집된 기록을 봤을 뿐입니다. 24시간 365일을 수십 년째 버텨온 사람들의 삶을 그 짧은 시간 안에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사실 꽤 오만한 전제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떠오른 건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었습니다. 항공기가 강에 불시착한 뒤 기장의 판단이 옳았느냐 그렇지 않았느냐를 사후에 시뮬레이션으로 따지는 장면, 결과를 알고 나서 되돌아보며 "왜 그 선택을 했느냐"고 묻는 장면. 실생활의 딜레마를 결과론적으로만 평가하면 당사자에게 얼마나 가혹한지를 보여주는 영화였는데,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보면서 정확히 그 감각이 겹쳤습니다.

    감독이 이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보여준 연출 방식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족사를 다루면서도 감정을 최대한 절제했습니다. 자극적인 장면을 굳이 부각시키거나, 관객의 눈물을 유도하는 연출을 의도적으로 피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를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 방식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다이렉트 시네마란 카메라가 개입하거나 해설을 덧붙이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기법을 말합니다. 감독은 누나를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을 해설이 아니라 화면의 결로 보여줬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방식은 관객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조현병은 전 세계 인구의 약 1%가 앓고 있으며, 조기 개입(Early Intervention)이 장기 예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됩니다(출처: WHO 조현병 팩트시트). 여기서 조기 개입이란 증상 발현 초기에 전문적인 약물치료와 심리사회적 지원을 동시에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영화 속 누나의 경우는 그 골든타임을 25년 동안 놓친 셈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부모를 함부로 비난할 수 없는 이유를, 영화는 말로 설명하지 않고 화면으로 보여줍니다.

    정신건강 분야 연구에서는 가족 돌봄 제공자(Family Caregiver)의 소진 문제가 꾸준히 주목받고 있습니다. 가족 돌봄 제공자란 전문 의료인이 아닌 가족 구성원이 장기적으로 환자를 직접 돌보는 역할을 맡게 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출처: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 영화 속 부모님도 결국 이 구조 안에서 수십 년을 버텼고, 어머니는 치매가 오고 나서야 그 역할에서 벗어났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먹먹했던 장면은 사실 극적인 순간이 아니라, 일상적인 장면들 속에 배어 있는 그 피로감이었습니다.

    요약: 결과를 알고 나서 내리는 판단은 쉽다. 그 25년의 무게를 짧은 관람 시간 안에 재단하는 건 당사자들에게 가혹한 일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감독 본인이 영화 상영 후 OTT나 DVD 등으로는 공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사적인 가족 영상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로서는 극장 상영 회차를 통해서만 관람이 가능하며, 상영 일정은 배급사나 각 극장 공식 채널을 통해 확인하시는 편이 가장 정확합니다.

     

    Q. 조현병은 치료하면 완전히 낫나요?

    A. 완치보다는 증상 관리와 기능 회복이 현실적인 목표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3개월의 약물치료만으로 누나가 대화가 가능해지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는데, 이는 조기 개입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WHO에 따르면 적절한 치료를 받은 환자의 상당수가 사회 복귀가 가능한 수준으로 회복됩니다.

     

    Q. 영화에 스포일러가 있어도 봐도 될까요?

    A. 제 경험상 이 영화는 줄거리보다 영상 자체의 질감이 주는 감정이 훨씬 크게 작용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봐도, 실제 영상 앞에서 느끼는 감각은 전혀 다릅니다. 내용을 미리 알고 가도 관람에 크게 지장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Q. 감독은 왜 이 영화를 만들었나요?

    A. 후진노 토모아키 감독은 어린 시절 누나의 조현병 증상으로 인한 폭력성과 집안의 붕괴를 피해 스스로 독립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후 성인이 되어 가족의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결심으로 2001년 캠코더를 들었고, 그렇게 시작된 기록이 20년 분량의 다큐멘터리가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원인을 분석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 시간을 담담하게 남기려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영화관을 나오면서 제가 계속 되뇐 문장이 있습니다. "나라면 잘했을까."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습니다. 25년의 무게를 1시간 40분으로 압축해 본 제가 "저라면 더 잘했을 겁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이 영화는 누군가의 잘못을 가리는 법정 드라마가 아닙니다. 각자의 최선이라고 믿었던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진 25년을, 그냥 바라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아직 상영 중이라면 직접 보시길 권합니다. 특히 가족 중 정신질환을 앓는 분이 있거나, 돌봄의 무게를 짊어진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이 영화가 조금 다르게 닿을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