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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는 영화음악가로서 정식 훈련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이 그를 20세기 가장 독보적인 영화음악가로 만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영화음악이란 장면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도구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그의 작품들을 하나씩 다시 들어보면서 확신하게 된 것은 전혀 다릅니다. 그의 음악은 장면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장면 옆에 나란히 서서, 우리가 듣지 못하고 지나쳤던 소리들 쪽으로 조용히 고개를 돌리게 합니다.
아도르노의 고발, 그리고 사카모토라는 반례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Adorno, 1903~1969)는 작곡가 한스 아이슬러와 함께 영화음악을 정면으로 비판한 논문을 남겼습니다. 여기서 아도르노가 제기한 핵심 개념이 바로 '감정의 강요'입니다. 감정의 강요란, 음악이 관객에게 특정 장면에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를 미리 알려주는 구조를 말합니다. 위기의 순간에 현악기가 커지고, 감동의 순간에 피아노가 잔잔히 깔리는 것. 그는 이 관행이 관객의 자율적 판단 능력을 마비시킨다고 보았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영화음악이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틈, 즉 낯섦과 위화감을 매끄럽게 봉합하는 '접착제'로 전락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관객이 불편함을 느끼기 전에 음악이 먼저 달려와 모든 것을 친절하게 정리해버린다는 것입니다. 가혹하지만, 솔직히 부정하기 어려운 지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카모토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 비판이 좀처럼 들어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의 선율이 아름답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의 음악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아도르노의 전제와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아도르노는 영화음악을 이데올로기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이데올로기란, 관객을 편안하게 만들어 비판적 사고를 차단하는 장치를 뜻합니다. 사카모토의 음악은 그 반대편에서 출발합니다.
- 아도르노가 비판한 영화음악의 핵심: 이미지 봉합 + 감정 강요
- 사카모토의 방법론: 이미지와 음악 사이에 팽팽한 거리를 두는 것
- 두 접근법의 차이: 관객을 편안하게 만드느냐, 불편하게 깨우느냐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마지막 황제까지, 무지가 만든 문법
1983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에 배우로 출연하게 된 사카모토는 감독에게 음악도 직접 맡겠다고 제안합니다. 당시 그는 영화음악의 문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장면에 음악을 맞추는 법, 컷 편집에 맞춰 큐를 설계하는 법. 훈련된 영화음악가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것들을 그는 몰랐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무지가 그를 전혀 다른 길로 이끌었습니다. 'Merry Christmas, Mr. Lawrence'라는 그 유명한 곡은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흐르지만, 어떤 장면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인물의 심리를 대변하지도 않습니다. 포로수용소라는 잔혹한 배경과 그 서정적 선율은 의도적으로 어긋나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먼저 왔습니다. 그 어긋남이 불편했고, 그래서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후 <마지막 황제>(1987,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를 맡았을 때도 그의 방식은 달랐습니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대작 영화에서 많은 작곡가들은 오음 음계(pentatonic scale)와 징 소리로 손쉬운 '중국풍'을 만들어 왔습니다. 오음 음계란 서양 12음 체계와 달리 다섯 개의 음으로 구성되는 음계로, 동아시아 전통 음악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구조입니다. 이 기호를 활용하면 관객은 즉각 '이건 중국 이야기'라는 신호를 받게 됩니다.
사카모토는 그 함정을 피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나기 전 구할 수 있는 중국 음악 음반을 모조리 사서 들었습니다. 그가 말한 이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을 흉내 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흉내 내면 안 되는지 알기 위해서라고요. 이 태도가 아시아 최초의 아카데미 작곡상이라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출처: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 그러나 저는 그 수상보다, 그가 연구를 시작한 이유 자체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침묵이 아닌 다른 소리, 레버넌트와 존 케이지
2014년 인후암 판정을 받고 모든 활동을 중단했던 사카모토는,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의 요청으로 <레버넌트>(2015)의 음악 작업을 맡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의 방법론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에 이릅니다.
<레버넌트>를 직접 들어보면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음악이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소리의 울림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다음 음은 오지 않습니다. 저는 처음 이 부분을 들었을 때 재생이 멈췄나 싶어 화면을 확인했습니다. 그 착각의 순간, 화면 속 인물은 숨이 끊어질 듯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카모토가 말하는 '소리와 소리 아닌 것의 경계'입니다.
이 물음을 20세기에 가장 유명하게 제기한 사람은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입니다. 그의 작품 <4분 33초>에서 연주자는 정해진 시간 동안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케이지가 말하려 한 것은 '음악적 침묵'의 역설입니다. 음악적 침묵이란, 악보상 소리가 없는 구간이지만 실제로는 객석의 기침 소리, 옷깃 스치는 소리, 바깥의 자동차 소리 같은 환경음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케이지는 침묵이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우리가 그 소리들을 음악으로 듣지 않았을 뿐이라고요.
사카모토는 케이지의 직계 제자가 아니었지만, 만년에 같은 물음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숲의 소리, 물의 소리, 얼음의 소리를 채집하러 다녔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의 쓰나미에 휩쓸렸던 피아노를 만났을 때는 "자연이 조율해준 피아노"라고 불렀습니다. 한국 영화 <남한산성>(2017)에서도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성의 장면에서 음악이 물러난 자리를 그는 침묵으로 두지 않았습니다. 바람 소리, 눈 소리, 숨소리로 채웠습니다. 음악이 멈춘 것이 아니라, 다른 소리가 계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사카모토 남한산성 OST 수록곡 확인).
괴물, 남은 시간으로 완성한 마지막 문장
2023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영화 <괴물>의 음악을 의뢰했을 때 사카모토는 이미 전곡을 새로 쓸 체력이 없었습니다. 그는 두 곡만 새로 작곡했고, 나머지는 자신이 이전에 만들어둔 곡들로 채웠습니다. 그해 1월 발표한 앨범의 수록곡들이 영화로 흘러들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영화음악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괴물>을 다시 보면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 그 음악들은 이 영화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던 음악이 영화라는 공간으로 흘러들어온 것입니다. 영화를 위해 음악이 쓰인 것이 아니라, 음악과 영화가 대등하게 만난 것입니다. 아도르노가 비판한 주종 관계, 즉 이미지에 종속되는 음악이라는 구조가 여기서 완전히 뒤집힙니다.
일반적으로 영화음악가는 편집이 완료된 영상을 보며 타이밍을 맞춰 곡을 만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포스트 스코어링(post-scoring)'이라고 합니다. 포스트 스코어링이란 화면의 길이와 분위기에 맞춰 음악을 재단하는 방식으로, 대부분의 상업 영화음악이 이 방법을 따릅니다. 제가 경험상 이 방식으로 만들어진 음악들을 들을 때, 대체로 장면이 끝나는 순간 음악도 깔끔하게 정리됩니다. 여운이 없습니다. 사카모토의 음악은 정반대입니다. 장면이 끝나도 소리의 울림이 남습니다.
그는 남은 시간 속에서 음악을 자유롭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말치고는 놀랍도록 평온합니다. 하지만 그의 작업 방식 전체를 생각하면 이해가 됩니다. 그는 평생 소리가 사라지는 순간, 울림이 잦아드는 자리를 가장 오래 들여다본 사람입니다. 그에게 소멸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소리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사카모토가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작품이 뭔가요?
A. 1988년 영화 <마지막 황제>의 음악으로 데이비드 번, 공 수와 함께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했습니다. 아시아 출신 음악가로서는 최초의 수상이었으며, 같은 해 골든 글로브 음악상과 그래미 어레인지먼트상도 받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수상이 그의 대표 업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저는 수상 이면의 연구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한 지점이라고 봅니다.
Q. 아도르노는 모든 영화음악을 부정했나요?
A. 아도르노는 특정 영화음악을 겨냥했다기보다, 영화음악이 산업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구조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음악이 관객의 감정을 미리 결정해버리는 메커니즘 자체를 문제로 삼은 것입니다. 그 비판이 지금도 유효한 이유는, 실제로 많은 상업 영화음악이 그 구조 안에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Q.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진짜 음악인가요?
A. 연주자가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는 이 작품은 1952년 초연 이후 70년 넘게 논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케이지의 논지는 단순합니다. 소리가 없는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음악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 환경음은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물음은 사카모토가 영화음악에서 '침묵의 자리'를 다루는 방식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Q. 사카모토의 마지막 영화음악이 왜 괴물인가요?
A. 사카모토는 2023년 3월 세상을 떠났고, <괴물>은 그해 5월 칸 영화제에서 공개되었습니다. 그는 생전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의뢰를 받아 두 곡을 새로 작곡하고, 나머지는 기존 작품으로 채워 음악 작업을 마쳤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가 참여한 마지막 영화 프로젝트가 된 것입니다.
결론
류이치 사카모토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개 선율의 아름다움부터 꺼냅니다.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그 피아노, 마지막 황제의 웅장한 오케스트라. 그러나 제가 그의 작품들을 오래 들으면서 결국 도달한 생각은 이것입니다. 그가 남긴 것은 선율이 아니라, 음악을 듣는 방식 그 자체라는 것.
음악이 물러난 자리에서 무엇이 들리는가. 소리가 완전히 잦아들었다고 믿은 그 순간, 실은 무엇이 남아 있는가. 사카모토는 그 자리를 급하게 채우지 않았습니다. 아도르노가 비판한 영화음악의 문법, 즉 장면을 봉합하고 감정을 강요하는 구조를 평생 거부했습니다. 그 거부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그의 음악에서 반복되는 '소리가 멎은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가 떠난 지금도, 그 자리에서 무언가는 계속 울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