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2022년 봄, TV에서는 구씨가 염미정을 추앙하고 있었고, 극장에서는 강해상이 마석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같은 배우가 같은 시간대에 이렇게 다른 두 얼굴을 보여준다는 게 처음엔 잘 실감이 안 됐습니다. 그런데 두 캐릭터가 만들어진 과정을 알고 나니, 결과보다 그 앞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마음에 남았습니다.
구씨를 먼저 알아본 사람, 강해상을 추천받은 사람
<나의 해방일지>의 김석윤 감독은 촬영 현장에서 손석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역할이 인생 캐릭터가 될 것"이라고요. 저도 처음엔 그게 단순한 격려성 발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손석구가 방송이 나간 뒤 완성된 구씨를 보고 나서야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고 털어놓은 걸 보면, 감독이 먼저 본 건 뭔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인생 캐릭터'란 단순히 연기를 잘한 역할이 아니라, 배우의 커리어 전체에서 하나의 기점이 되는 인물을 의미합니다. 배우 스스로도 그 경험 전과 후로 나뉘게 되는 역할이죠. 감독은 편집이라는 후반 작업(포스트 프로덕션)까지 염두에 두고 손석구의 가능성을 미리 읽었던 겁니다. 포스트 프로덕션이란 촬영이 끝난 뒤 편집, 색 보정, 음향 작업 등을 통해 최종 결과물을 완성하는 전 과정을 뜻합니다.
반면 <범죄도시2>의 이상용 감독은 당시 손석구를 잘 몰랐다고 했습니다. 제작사 대표의 추천을 받고 나서야 <센스8>, <60일, 지정생존자> 같은 전작을 찾아봤다고요. 제가 직접 그 작품들을 다시 떠올려보니, 손석구는 작품마다 분명히 다른 결을 가진 배우였습니다. 같은 무표정인데도 뭔가 다르게 읽혔거든요. 감독도 그 점에 끌렸다고 했습니다. 작품마다 연기 방식이 달랐고, 일반적인 접근을 하지 않는 배우라는 인상을 받았다는 겁니다.
- 김석윤 감독: 촬영 전부터 인생 캐릭터가 될 것이라 확신, 편집 후 완성될 구씨를 미리 그렸음
- 이상용 감독: 제작사 추천 후 전작을 찾아보며 캐스팅 확신을 얻음, 첫 미팅에서 화면과 다른 인상을 받음
- 두 감독 모두 손석구의 '한쪽으로만 읽히지 않는 얼굴'에서 가능성을 봤다는 점은 같음
침묵은 같아도 그 안의 감정이 달랐다
손석구가 직접 설명한 두 캐릭터의 차이가 제게는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구씨는 작은 상처도 크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말이 없는 건 상처받기 싫어서, 또는 이미 받아서 조용해진 사람에 가깝다는 거죠. 반면 강해상을 만들 때 손석구가 중심에 둔 감정은 '울분'이었습니다.
울분이란 쌓인 원한과 억울함이 겉으로 터져나오지 못하고 안에서 부글거리는 감정 상태를 말합니다. 피해의식이 강하고,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는 사람. 그래서 강해상은 대본에 있던 대사도 줄이고 행동으로 감정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이 접근 방식은 연기 방법론에서 '물리적 액션 중심 캐릭터 구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말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도록 인물을 설계하는 방식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꽤 어려운 선택입니다. 대사를 줄인다는 건 배우에게 감정을 설명할 수단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거든요. 그만큼 신체적 표현과 눈빛, 호흡으로 그 공백을 채워야 합니다. 강해상이 화면 밖에서도 오래 남는 이유가 여기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구씨는 무슨 마음인지 알고 싶게 하고, 강해상은 다음 행동이 무서워서 눈을 못 떼게 만들었으니까요.
체중을 약 10kg 늘리고 거의 1년간 태닝을 지속하며 외형부터 바꾼 것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머리 스타일, 의상, 피부 톤까지 수차례 방향을 바꾸면서 강해상이라는 인물을 몸으로 구체화해간 과정은, 배우가 캐릭터에 얼마나 신체적으로 헌신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외형 변신은 단순한 분장이 아니라 캐릭터 내면을 밖으로 드러내기 위한 신체적 동기화(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배우 연기 연구 자료)로 볼 수 있습니다. 신체적 동기화란 배우가 인물의 내면 상태를 몸의 변화를 통해 실제로 체화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열정이 열정에게 응답한 캐스팅
손석구가 강해상을 수락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멜로가 체질>이 끝날 무렵 출연 제안을 받았지만, 액션 연기 경험도 없었고 액션 영화를 특별히 원했던 것도 아니었다고요. <범죄도시>를 좋아하는 것과 그 안에 직접 들어가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던 거죠.
제가 직접 어떤 일을 할지 말지 오래 고민해본 경험이 있는데, 결국 결정을 바꾸는 건 대부분 사람이었습니다. 손석구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상용 감독을 만나 영화에 쏟는 열정을 직접 보고 나서야 마음이 달라졌다고 했으니까요. 재미있는 건 감독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는 겁니다. 감독은 배우의 여러 면모와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태도에 마음이 움직였고, 배우는 감독의 열정에 응답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확신을 준 셈이죠.
이 상호 신뢰 기반의 캐스팅 방식은 영화 산업에서 창작적 파트너십이라고 부릅니다. 단순히 조건이 맞아서 계약하는 게 아니라, 만들고자 하는 것에 대한 공통된 열망이 먼저 형성되어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실제로 한국 영화 산업 내 제작 환경 분석 보고서에서도 감독과 배우 사이의 사전 창작 합의가 작품 완성도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 언급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그리고 손석구는 악역을 맡는다면 가장 강한 역할에 도전해보자는 생각도 선택에 영향을 줬다고 했습니다. <범죄도시> 전편의 악역 장첸과 비교될 것을 알면서도 뛰어든 거죠. 그 선택이 결국 천만 관객을 만든 강해상이 됐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손석구는 나의 해방일지와 범죄도시2를 동시에 찍은 건가요?
A. 두 작품이 2022년 봄 거의 같은 시기에 대중과 만났지만, 촬영 자체는 시기가 달랐습니다. <나의 해방일지>는 드라마이고 <범죄도시2>는 영화라 제작 일정도 다르게 진행됐습니다. 같은 배우의 두 작품이 이렇게 겹쳐서 공개된 건 드문 경우에 속합니다.
Q. 강해상이 장첸보다 더 강한 악역이라는 평가가 많던데 실제로 그런가요?
A.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강해상은 전편 장첸과 다른 방식으로 강렬했습니다. 손석구 본인도 비교를 의식하며 도전했다고 했는데, 악역의 결이 달랐던 게 오히려 강해상을 독립적인 캐릭터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제가 극장에서 봤을 때도 장첸과 겹쳐 보이기보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느껴졌습니다.
Q. 손석구는 왜 액션 영화를 꺼렸다고 했나요?
A. 경험이 없었던 것도 있고, 장르 자체에 특별한 선호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범죄도시>를 좋아하는 팬으로서의 마음과 그 안에서 직접 연기하고 싶은 마음은 다르다고 솔직히 말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결국 감독의 열정이 그 거리를 좁혔습니다.
Q. 구씨 추앙 신드롬이 실제로 얼마나 컸나요?
A. 방송 당시 SNS에서 구씨 관련 언급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나도 누군가에게 추앙받고 싶다"는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드라마 속 관계 설정이 현실 감각을 건드린 것도 있었지만, 손석구가 구씨를 얼마나 섬세하게 쌓아올렸는지가 그 열기의 핵심이었다고 봅니다.
결론
제가 이 이야기를 알고 나서 느낀 건, 좋은 캐스팅은 배우에게 맞는 옷을 찾는 일이 아니라 아직 꺼내지 않은 서랍을 여는 일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김석윤 감독은 편집 전부터 구씨의 가능성을 읽었고, 이상용 감독은 추천받은 배우를 직접 만나가며 강해상을 완성할 사람임을 확신했습니다. 출발은 달랐지만 둘 다 손석구라는 배우 안에서 남들이 먼저 보지 못한 무언가를 꺼낸 겁니다.
손석구 입장에서도 두 작품은 단순한 성과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구씨를 완성된 편집본으로 처음 봤을 때의 놀라움, 강해상을 만들기 위해 1년 가까이 몸을 바꿔간 과정 모두, 배우 스스로도 새로 발견해간 이야기였으니까요. 다음에는 또 어떤 감독이 손석구에게서 어떤 서랍을 열지 정말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