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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 크게 기대 안 했습니다. 스파이더맨도 이제 네 번째고, 히어로물 특유의 공식이 좀 피로하게 느껴지던 시점이었거든요. 근데 막상 보고 나서 "어, 이거 완전 최고인데?"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영화《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데스틴 크리튼 감독이 연출하고, 토머스 홀랜드·젠데이아·제이콥 배덜런이 그대로 돌아온 작품입니다. 러닝타임 145분, 12세 관람가입니다.
기대치를 낮추고 들어갔는데, 오히려 그게 맞았습니다
저는 마블 소위 말하는 "구력"이 짧습니다. 어벤져스 시리즈와 X맨 정도는 알고, 스파이더맨은 토머스 홀랜드 버전을 전부 챙겨봤지만 그 외 세계관은 솔직히 헷갈립니다. 그렇다 보니 마블 신작이 나올 때마다 "이거 다 알고 봐야 하나?" 하는 피로감이 먼저 드는 편이었어요.
이번 작품도 그런 마음가짐을 갖고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어차피 히어로물 공식대로 흘러가고, 액션 나오고, 마지막에 여운 남기고 쿠키 영상 하나 나오겠거니 하고요.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깊이 있는 드라마가 깔려 있었습니다.
전작 《노 웨이 홈》에서 피터 파커는 주변 모든 이들의 기억에서 자신을 지우는 선택을 했습니다. 여기서 기억 삭제란 단순히 신원이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MJ와 네드 같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자체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설정이 브랜드 뉴 데이에서 얼마나 무겁게 작동하는지, 저도 실제로 보기 전까지는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마블 세계관 확장, 이번엔 부담 없이 즐겼습니다
마블 영화를 볼 때마다 저를 제일 불편하게 했던 건 세계관 연결고리였습니다. 모르면 손해 보는 것 같고, 알면 알수록 더 알아야 할 것들이 생기는 구조요. 그런데 이번 작품은 그 부분에서 꽤 친절했습니다.
헐크, 블랙 위도우, 프랭크(퍼니셔), 스콜피온, 그리고 닌자 조직 핸드까지 등장합니다. 여기서 핸드(The Hand)란 마블 유니버스 내 고대 닌자 비밀결사로, 《데어데블》 등에서 등장한 바 있는 조직입니다. 이들의 서사를 몰라도 "오래된 닌자 조직이 나왔구나" 정도로만 이해해도 극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실감했는데, 블랙 위도우를 모르더라도 "정보력 빠삭한 특수요원 출신"으로 읽히고, 프랭크 역시 "가족을 잃은 고독한 군인" 정도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무엇보다 핸드의 닌자 액션 장면은 제가 극장에서 실제로 감탄 소리를 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아이돌 그룹인가 싶을 만큼 칼각이었어요.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크로스오버 방식, 즉 서로 다른 세계관의 캐릭터들을 한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여 넣는 기법은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습니다. 다만 이전 시리즈를 모두 이해하고 봐야 진가를 느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아는 만큼 보이지만 몰라도 충분히 재밌는 구조라고 느꼈습니다.
- 헐크 — 전작을 몰라도 강력한 조력자로 자연스럽게 등장
- 블랙 위도우 — 배경 없이도 "정보·전술형 캐릭터"로 읽힘
- 프랭크(퍼니셔) — 가족을 잃은 인물이라는 설명만으로 감정선 전달
- 핸드 — 닌자 조직 특유의 군무형 액션으로 시각적 완성도 높음
- 스콜피온 — 빌런 진영의 물리적 위협 담당으로 적재적소 활용
쿠키영상 솔직 리뷰 — 기다릴 필요 없습니다
마블 영화라면 빠질 수 없는 게 쿠키영상입니다. 여기서 쿠키영상(Post-credits scene)이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추가로 삽입되는 짧은 영상 클립으로, 다음 작품이나 세계관 확장을 암시하는 장치로 쓰입니다. 마블이 이 방식을 처음 대중화했을 때는 정말 짜릿했죠. 문제는 이제 그게 하나의 의무처럼 느껴진다는 겁니다.
이번 작품의 쿠키영상은 자막이 전부 올라간 뒤에 등장합니다. 제가 직접 끝까지 앉아서 확인했는데, 솔직히 없어도 크게 상관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스파이더맨을 정말 사랑하는 분이라면 직접 확인하시는 걸 말리진 않겠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도 아쉬울 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마블의 쿠키 정책에 좀 불만이 있습니다. 자막 다 올라가고 나서 나오는 방식은 관객 입장에서 상당히 불편합니다. 《앤트맨》처럼 자막 초반에 바로 나오는 구조가 훨씬 낫습니다. 두 개씩 넣거나 자막 전과 후로 나눠 넣는 방식도 언제부터인가 관례처럼 굳어졌는데, 이건 관객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강제 잔류에 가깝습니다. 우리 돈 내고 보는 건데 선택권은 관객에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블의 쿠키영상 활용 방식은 주요 영화 평론 플랫폼에서도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논쟁 포인트입니다. 팬서비스냐, 관객 피로냐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토머스 홀랜드 스파이더맨 시리즈 중 제일 내 스타일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작품이 토머스 홀랜드 스파이더맨 시리즈 중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노 웨이 홈》이 팬서비스 측면에서는 압도적이었지만, 그건 구 스파이더맨 시리즈와의 오마주 효과가 상당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순수하게 이 작품 자체의 완성도만 놓고 보면, 브랜드 뉴 데이가 더 균형 잡혀 있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진 그레이가 빌런으로 등장하는 구조가 흥미로웠습니다. 진 그레이(Jean Grey)는 원래 X맨 세계관의 뮤턴트 캐릭터로, 강력한 사이킥 능력과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는 고통이라는 서사를 지닌 인물입니다. 이 캐릭터의 내면 갈등을 피터 파커의 과잉 성장하는 거미 DNA 제어 문제와 연결한 방식은, 제가 보기에 단순한 팬서비스가 아니라 서사적으로 설득력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MJ와의 관계 재설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막장 로맨스 전개를 슬쩍 기대하게 만들다가 깔끔하게 선을 긋고, 네드와의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쌓아가는 엔딩은 리셋 서사를 군더더기 없이 처리한 장면이었습니다. 영화 속 리셋(Reset)이란 캐릭터의 기억이나 관계가 초기화되는 서사 장치인데, 이걸 억지스럽게 봉합하지 않고 새로운 출발점으로 기능하게 만든 연출이 좋았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합전산망 기준으로 마블 히어로물은 국내 관객 점유율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으며(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그만큼 팬층의 기대치도 매 편마다 높습니다. 그 기대치를 이번 작품이 제 기준에서는 충분히 충족했습니다. 새로운 건 없지만 잘 버무려진 영화,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국밥 같은 저점 방어력이 이번에도 건재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전작 안 봐도 되나요?
A. 저는 마블 세계관을 다 알고 본 게 아니었는데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알아야 할 건 "어떤 사건 때문에 피터 파커가 주변 사람들 기억에서 지워졌구나, MJ와 네드가 원래 가까운 사이였구나" 정도입니다. 블랙 위도우나 프랭크, 진 그레이의 전작 서사는 몰라도 영화 안에서 역할이 충분히 읽힙니다.
Q. 쿠키영상 꼭 봐야 하나요?
A. 제가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확인했는데, 자막이 전부 올라간 뒤에 쿠키영상이 하나 나옵니다. 스파이더맨 팬이라면 직접 보시는 분도 있겠지만, 이후 스토리 이해에 결정적인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이동이 급한 상황이라면 과감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도 크게 아쉽지 않을 수준입니다.
Q. 핸드(The Hand)가 뭔가요? 닌자 나오는 장면이 많은가요?
A. 핸드는 마블 유니버스에 등장하는 고대 닌자 비밀결사 조직입니다. 드라마 《데어데블》 등에서 주요 세력으로 등장한 바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전작 맥락을 몰라도 "강력한 닌자 집단"으로 충분히 파악됩니다. 액션 장면에서 군무처럼 칼각으로 움직이는 연출이 인상적이었고, 저는 이 장면에서 극장에서 가장 크게 반응했습니다.
Q. 노 웨이 홈이랑 비교하면 어떤가요?
A. 《노 웨이 홈》은 역대 스파이더맨 캐릭터를 한 자리에 모으는 팬서비스 측면에서는 압도적이었습니다. 다만 그 임팩트는 오마주 효과가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고 봅니다. 브랜드 뉴 데이는 그런 깜짝 등장 카드 없이도 작품 자체의 드라마와 액션으로 무게를 잡았고, 저는 오히려 이쪽이 더 온전히 즐겼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들어갔을 때 오히려 더 많이 돌려받는 작품이었습니다. 마블 세계관을 빠삭하게 알 필요도 없고, 전작을 전부 예습하고 갈 필요도 없습니다. 저처럼 "어벤져스 정도만 아는 일반인"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히어로물에 살짝 물린 분들께도 한 번쯤 극장에서 볼 만한 작품입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 특유의 저점 방어력, 이번에도 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