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2011)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경쟁 부문에 오른 작품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어벤저스에서 로키를 연기한 톰 히들스턴이 피츠제럴드 역으로 등장하는 걸 보고 반가움에 집중했는데, 끝나고 나서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단순한 파리 감성 영화가 아니었으니까요.
줄거리: 자정마다 열리는 시간 여행의 문
주인공 길은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입니다. 약혼녀 이네즈, 그리고 공화당 성향의 예비 장인어른 부부와 함께 파리를 찾지만, 이 여행에서 길의 속마음은 내내 따로 놀고 있습니다. 소설가로 전향하고 싶다는 꿈은 이네즈에게 번번이 묵살되고, 파리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도 말리부를 원하는 이네즈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 초반부는 단순한 커플 갈등이 아니었습니다. 길이 자신의 삶에서 철저히 이방인이 되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어느 밤, 길은 이네즈 일행과 따로 행동하다 술에 취해 길을 잃습니다. 어딘지 모를 계단에 앉아 있던 그 앞에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오래된 푸조 한 대가 멈춥니다. 이 장면이 바로 영화의 핵심 장치인 타임 슬립(time slip), 즉 자정에만 열리는 시간 이동의 문입니다. 쉽게 말해 현실과 과거가 교차하는 경계선이 자정이라는 설정입니다.
그 차를 타고 간 파티에서 길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부부와 콜 포터를 만나고, 이어서 어니스트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 파블로 피카소를 만납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들을 봤을 때, 근현대 서양 예술문학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덕분에 매 등장 인물마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습니다. 반면 사전 지식이 전혀 없다면 그냥 낯선 이름들의 향연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영화가 누구에게나 통하는 로맨틱 코미디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근현대 예술계에 대한 관심이 있을수록 체감 재미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1920년대 재즈 시대의 상징적 인물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의 작가, 파리 망명 문학가 집단의 중심인물
- 거트루드 스타인: 미국 출신 작가이자 예술 후원가, 피카소와 헤밍웨이를 연결한 살롱의 주인
- 파블로 피카소: 입체주의(Cubism)의 창시자,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동시에 표현하는 화풍을 개척한 화가
- 살바도르 달리: 초현실주의(Surrealism)를 대표하는 화가, 무의식과 꿈의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한 인물
살바도르 달리가 등장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서 초현실주의(Surrealism)란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예술로 구현하려 한 20세기 전반의 예술 운동입니다. 길이 자신이 2010년대에서 왔다고 밝혀도 달리 일행은 전혀 놀라지 않습니다. 이미 현실 너머를 탐구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우디 앨런이 그 설정을 이렇게 유머로 풀어낼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피카소의 연인 아드리아나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길과 아드리아나는 함께 1890년대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로 건너가고, 그곳에서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에드가 드가, 폴 고갱을 만납니다. 벨 에포크란 19세기 말부터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프랑스가 번영을 누리던 황금기를 가리킵니다. 아드리아나는 그 시대에 머물고 싶어하고, 그 시대의 예술가들은 또 르네상스를 그리워합니다. 이 순간, 길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멈칫합니다. 제가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도 똑같은 기분이었습니다. 황금시대에 대한 동경이 결국 현재로부터의 도피였다는 걸 길도, 저도 그 순간 알아챘습니다.
황금시대의 함정, 그리고 제가 이 영화를 두 번 본 이유
일반적으로 이 영화를 파리의 낭만을 담은 로맨틱 코미디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영상미는 정말 압도적입니다. 황혼 무렵의 세느강, 빗속의 골목, 몽마르트르 계단까지, 카메라가 닿는 파리의 모든 장면이 그림엽서처럼 완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 영화의 진짜 무게는 두 번째 감상에서야 제대로 느껴졌습니다.
첫 번째로 봤을 때는 1920년대 예술가들의 등장 자체가 신선해서 거기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봤더니 길의 선택들이 훨씬 입체적으로 보였습니다. 이네즈 약혼녀의 진주 귀걸이를 몰래 꺼내 아드리아나에게 선물하려 했던 장면, 이네즈와 폴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헤밍웨이의 입을 통해 듣는 장면, 그리고 약혼이 파토 나고 홀로 파리를 떠돌다 벼룩시장에서 만났던 여자 가브리엘과 다시 마주치는 장면. 이 흐름이 두 번째 볼 때는 훨씬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습니다.
황금시대(Golden Ag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과거의 특정 시기가 현재보다 월등히 풍요롭고 이상적이었다는 인식으로, 심리학적으로는 '과거 미화 편향(Rosy Retrospection)'과 연결됩니다. 과거 미화 편향이란 지나간 경험을 실제보다 더 긍정적으로 기억하는 인지 편향을 말합니다. 길이 1920년대를 동경하고, 아드리아나가 벨 에포크를 동경하고, 벨 에포크 시대의 드가가 르네상스를 그리워하는 구조는 이 심리를 영화적으로 완벽하게 시각화한 것입니다. 우디 앨런이 이 개념을 이렇게 우아하게 풀어낼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어떤 시절이 '지금보다 더 나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면, 그 감정이 실제 과거의 우월함에서 온 게 아니라 현재에 대한 불만족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영화는 이것을 설교하지 않고, 그냥 길의 얼굴에 담아냅니다. 그게 이 영화가 강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비가 내리는 파리 밤거리를 가브리엘과 나란히 걷는 길의 뒷모습입니다. "사실 파리는 비가 올 때 가장 아름다워요(Actually, Paris is the most beautiful in the rain)"라는 대사가 흐르며 영화는 조용히 끝납니다. 이 결말이 갑작스럽다고 느끼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고 나서는 이게 정확히 맞는 엔딩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길은 과거가 아닌 지금 이 순간, 이 빗속의 파리를 선택했으니까요.
사전 지식이 없다면 어떻게 볼까
사실 이 부분은 미리 밝혀둘 필요가 있습니다.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피카소, 달리 같은 이름들이 낯설다면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이 사람이 왜 대단한 건지'를 모른 채 지나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이 영화가 배경 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예술가들의 맥락을 조금이라도 알고 보면 체감 완성도가 전혀 달라집니다. 먼저 영화를 보고, 등장인물들을 검색해서 파악한 뒤 다시 감상하는 방법도 충분히 유효합니다. 저도 1회 감상 후 등장인물을 따로 찾아봤고, 그게 2회 감상을 훨씬 풍성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참고로 미드나잇 인 파리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 파리 예술가 집단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출처: MoMA(뉴욕 현대미술관)의 온라인 컬렉션에서 피카소, 달리의 작품 맥락을 무료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가 활동했던 1920년대 파리 문학 공동체에 대한 학술 자료는 출처: Encyclopædia Britannica에서 'Lost Generation'을 검색하면 정리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란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특히 파리에 모여 기존 가치관에 환멸을 느끼며 글을 쓴 미국 작가 세대를 가리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미드나잇 인 파리, 배경 지식 없이 봐도 재미있나요?
A. 일반적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피카소, 달리 같은 인물들의 맥락을 모르면 절반 정도의 재미만 가져가게 됩니다. 먼저 보고 나서 등장인물을 검색해 파악한 뒤 재감상하는 방법을 권합니다.
Q. 영화에서 자정마다 과거로 가는 설정이 현실적으로 말이 되나요?
A. 영화는 이 부분을 굳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타임 슬립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논리적 근거는 없습니다. 우디 앨런이 이 설정을 그냥 전제로 깔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식인데, 저는 그게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설명보다 감정이 먼저 오는 영화입니다.
Q.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제가 뭔가요?
A. 핵심 주제는 과거 미화 편향, 즉 지나간 시절이 지금보다 더 나았다는 믿음에 대한 성찰입니다. 황금시대(Golden Age)를 동경하는 모든 세대가 사실은 자신의 현재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길의 여정을 통해 보여줍니다. 어느 시대의 예술가든 자신의 시대를 황금시대로 여기지 않는다는 역설이 영화의 중심 메시지입니다.
Q. 파리 여행을 앞두고 보면 더 좋은 영화인가요?
A. 제가 느끼기엔 그렇습니다. 영화 속 세느강, 몽마르트르, 파리 벼룩시장 같은 장소들이 실제 여행 욕구를 자극하는 건 사실입니다. 다만 파리를 배경으로 한 미장센이 감성적 배경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의 핵심 무대로 기능하기 때문에, 여행 전후 어느 시점에 봐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경험이 됩니다.
Q. 영화 결말이 너무 갑자기 끝난다는 느낌이 드는데 정상인가요?
A. 저도 처음 봤을 때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감상에서는 그 여운이 오히려 이 영화만의 강점이라고 느꼈습니다. 길이 과거도, 이네즈도 선택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파리를 선택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 우디 앨런 특유의 열린 결말 방식이 이 영화의 주제와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결론
정리하면,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를 배경으로 한 로맨틱 판타지이면서,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조용한 질문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두 번 본 건 영상이 예뻐서이기도 했지만, 과거를 그리워하는 저 자신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길이 느꼈을 그 감정이 남 일 같지 않았습니다.
근현대 서양 예술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영화를 본 뒤 등장인물들을 찾아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두 번째 감상의 이유가 생깁니다. 1920년대 파리 문학 공동체인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맥락을 알고 나면 헤밍웨이가 던지는 대사 하나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아직 보지 않았다면 자정 무렵에 틀어두는 걸 권합니다. 분위기가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