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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개봉한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이 4K 리마스터링으로 2026년 9월 12일 국내에 재개봉합니다. 네이버 평점 8.7, 로튼 토마토 신선도 91%짜리 영화인데, 솔직히 처음 봤을 때 저는 "이게 대체 무슨 의미지?"라는 생각이 훨씬 먼저 들었습니다.
아비정전 뜻과 작품 배경
제목부터 짚고 넘어가는 게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됩니다. 아비정전(阿飛正傳)은 직역하면 '아비의 진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아비(阿飛)'란 반항적이고 방황하는 젊은이를 부르던 1960년대 홍콩 속어였고, '飛(날다)'라는 한자는 영화 속 핵심 모티프인 '발 없는 새'와도 연결됩니다. 제임스 딘 주연의 <이유 없는 반항>이 홍콩에 개봉했을 때 사용한 중국어 제목과 같다는 사실도 꽤 의미심장합니다.
영화는 1960년 홍콩을 배경으로 합니다. 왕가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자 장국영과 처음 호흡을 맞춘 작품이기도 합니다. 시간과 기억, 엇갈린 사랑이라는 요소들이 이 작품부터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후 왕가위 필모그래피의 골격이 여기서 만들어졌다고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홍콩필름아카이브(출처: 홍콩필름아카이브)는 이 영화의 '발 없는 새'를 당시 어디에도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했던 홍콩인의 정체성과 연결해 해석했습니다. 단순한 청춘 로맨스가 아니라 반환 이전 홍콩 사회의 불안과 부유(浮遊)를 담은 작품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그 시각이 꽤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 감독: 왕가위 / 개봉: 1990년 12월 22일 / 4K 재개봉: 2026년 9월 12일
- 장르: 드라마·로맨스 / 러닝타임: 95분 /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출연: 장국영, 장만옥, 유가령, 유덕화, 장학우, 양조위
- 촬영: 크리스토퍼 도일 / 배경: 1960년대 홍콩
줄거리와 출연진
경기장 매표소에서 일하는 수리진에게 아비가 처음 건네는 말은 이렇습니다. "4월 16일 오후 3시 전, 함께한 1분을 평생 기억할 거야." 이 대사 하나로 수리진의 마음을 얻고, 결혼을 원한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관계를 끊어버립니다. 이게 아비라는 인물의 전부입니다.
이후 댄서 루루와 만나지만 역시 한곳에 정착하지 못합니다. 자신을 키운 여자가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에 오랫동안 집착하던 아비는 생모가 필리핀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홍콩을 떠납니다. 한편 수리진은 경찰관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경찰관은 훗날 어머니를 잃은 뒤 오래 꿈꿔왔던 선원이 되어 홍콩을 떠납니다. 사람들은 계속 어긋나고, 아무도 제자리에 머물지 못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볼 때 가장 공들여 본 부분은 세 배우가 아비를 대하는 방식의 차이였습니다. 장만옥의 수리진은 상처를 받으면서도 아비에게서 눈을 못 뗍니다. 유가령의 루루는 포기할 줄을 모릅니다. 두 사람이 아비와 나누는 거리감이 완전히 달라서, 같은 인물을 보여주는 방식인데도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장국영은 거울 앞에서 난닝구 차림으로 혼자 맘보춤을 추는 장면 하나로 아비 전체를 설명해버립니다.
맘보(Mambo)는 쿠바에서 발전한 라틴 댄스 장르입니다. 쉽게 말해 즉흥성과 개인의 표현이 강한 춤인데, 아무도 없는 방에서 거울만 보며 혼자 추는 장면은 아비의 고립과 자기도취를 동시에 드러냅니다. 제가 직접 그 장면을 다시 봤을 때, 대사 없이 이렇게 많은 걸 전달하는 게 가능하다는 게 새삼 놀라웠습니다.
촬영을 맡은 크리스토퍼 도일의 네오누아르(Neo-noir) 스타일도 빠질 수 없습니다. 네오누아르란 고전 누아르의 어둡고 비관적인 분위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영상 언어입니다. 어두운 방, 비에 젖은 거리, 흔들리는 조명 같은 이미지들이 대사 대신 인물의 감정을 대신 말해줍니다.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허세 아닌가" 싶었는데, 반복해서 보니 그 이미지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결말과 관람평
결말 스포가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필리핀에 도착한 아비는 친어머니의 집 앞까지 갔다가 끝내 들어가지 못합니다. 어머니가 안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온 그 뒷모습이, 제 경험상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입니다. 이후 아비는 위조 여권 거래 과정에서 싸움에 휘말리고, 우연히 재회한 경찰관과 함께 기차를 타다가 총에 맞아 숨집니다.
기차 안에서 경찰관이 묻습니다.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그 1분 기억해?" 아비는 기억한다고 답하면서도, 수리진에게는 기억 못 한다고 전해달라고 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떠난 것처럼 행동했지만, 그 짧은 순간만큼은 끝까지 지우지 못했던 겁니다. 이 장면을 다시 봤을 때 저는 꽤 오래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아무 설명 없이 양조위가 좁은 방에서 손톱을 다듬고 외출 준비를 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왕가위 감독은 이 장면이 원래 기획됐던 아비정전 2부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였다고 직접 밝혔습니다(출처: IMDb 아비정전). 후속편이 제작되지 않으면서 양조위의 등장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았습니다. 요즘 식으로 치면 쿠키 장면인데, 본편과 연결이 안 된 채로 남겨진 쿠키입니다.
평점을 정리하면 네이버 8.7점, IMDb 7.4점, 로튼 토마토 신선도 91%·관객 지수 88%입니다. 평단과 관객 모두 높게 평가하는 편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수치면 무조건 명작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 영화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쉽게 열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처음 봤을 때는 "멋있긴 한데, 그래서 뭘 말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더 컸거든요. 두 번째, 세 번째에서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비정전 4K 리마스터링 재개봉일이 언제인가요?
A. 2026년 9월 12일 국내 재개봉이 확정되어 있습니다. 원작은 1990년 12월 22일 개봉했고, 러닝타임은 95분, 관람 등급은 15세 이상 관람가입니다.
Q. 아비정전 마지막에 갑자기 나오는 양조위는 누구인가요?
A. 본편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인물로, 왕가위 감독이 기획했던 아비정전 2부의 주인공이었습니다. 후속편이 끝내 제작되지 않으면서 그의 짧은 등장은 설명 없이 미완성으로 남았습니다. 영화의 가장 유명한 미제(未題) 장면입니다.
Q. 아비정전에서 '발 없는 새'가 무슨 의미인가요?
A. 아비가 스스로를 빗대어 하는 말입니다. 발이 없어 평생 하늘을 떠돌다 죽을 때야 처음 땅에 내려앉는 새처럼, 아비 역시 한 사람에게도 한 장소에도 머물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기차 안에서 맞는 죽음이 그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땅에 내려앉는 순간이 됩니다.
Q. 처음 보는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인가요?
A. 솔직히 첫 관람에서는 서사보다 이미지와 분위기가 앞서는 영화라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아비정전 뜻'과 '발 없는 새' 모티프, 그리고 양조위 장면의 배경 정도만 미리 알고 들어가면 훨씬 수월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결론
아비정전은 멋있다는 평가가 먼저 오는 영화이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장국영의 맘보춤, 크리스토퍼 도일의 네오누아르 촬영, 라틴 음악이 깔린 홍콩의 밤거리. 그런데 제가 직접 여러 번 돌려보면서 느낀 건, 이 영화의 진짜 무게는 이미지 뒤에 있다는 겁니다. 뿌리를 찾지 못한 사람이 끝내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이야기가 그 안에 있습니다.
4K 리마스터링으로 다시 극장에서 보게 된다면, 대사보다 장면을 따라가는 쪽을 권합니다. 시계, 공중전화, 빗속의 거리. 그 이미지들이 말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처음 보는 분이라면 제목의 뜻과 발 없는 새 모티프 정도만 알고 들어가면 충분히 길이 보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