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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끝나고 박스오피스 순위를 들여다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이 타짜 시리즈 최종장보다 2배 많은 관객을 연휴 첫 주말에 끌어모았고, 9월 30일자로 새로 극장에 출격한 치이카와 극장판이 실시간 예매율 1위를 찍었거든요. 박스오피스(Box Office), 즉 극장 수익과 관객 수를 집계한 흥행 차트를 보다 보면 단순한 숫자 너머로 그 시기 사람들이 무엇을 원했는지가 보입니다. 이번 추석 차트가 특히 그랬습니다.
추석 흥행의 구도 — 암살자들 vs 타짜4
제가 추석 연휴 동안 박스오피스 차트를 유심히 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이번엔 숫자 변화가 유독 드라마틱했습니다.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과 <타짜: 벨제붑의 노래>가 23일 동시 개봉해 정면승부를 펼쳤고, 개봉 첫 주말 3일 동안의 누적 관객 수는 <암살자들> 111만 명, <타짜: 벨제붑의 노래> 56만 명으로 두 배 가까운 격차가 벌어졌습니다.
타짜 시리즈라는 확고한 IP(지식재산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온 건 꽤 의미심장합니다. 여기서 IP란 특정 캐릭터·세계관을 기반으로 반복 제작되는 콘텐츠 자산을 뜻하는데, 통상적으로 기존 팬덤이 안정적인 초기 흥행을 보장한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번 결과는 달랐습니다. 추석 연휴라는 특수한 관람 환경, 즉 가족 단위 관객이 대거 몰리는 시기에는 브랜드 파워만으로 흥행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걸 이번에 다시 확인했습니다.
다만 흥미로운 반전도 있었습니다. 연휴가 끝나고 첫 평일인 28일 월요일에 <타짜: 벨제붑의 노래>가 하루 만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섰거든요. 가족 단위 관객이 빠진 평일에는 20~30대 팬덤의 집중 관람이 순위를 뒤집은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다음 날 다시 <암살자들>에게 1위를 돌려줬지만요. 개봉 8일 차인 30일 기준 <타짜: 벨제붑의 노래>는 누적 관객 100만을 돌파했고, <암살자들>은 169만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 암살자들 — 개봉 첫 주말 111만, 누적 169만 (9월 29일 기준)
- 타짜: 벨제붑의 노래 — 개봉 첫 주말 56만, 개봉 8일 차 누적 100만 돌파
- 두 작품 모두 200만 관객 레이스 진행 중
인턴과 가능한 사랑 — 숫자 뒤의 맥락
제 경험상 박스오피스 순위는 스크린 수와 묶어서 봐야 실상이 보입니다. 스크린 수(상영관 배정 수)란 특정 작품이 전국 몇 개 상영관에서 동시에 틀어지느냐를 뜻하는데, 이게 많을수록 당연히 관객이 더 유입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가능한 사랑>은 이번 박스오피스 5위권 작품들 중 가장 적은 스크린에서 상영 중임에도 4위에 올라 있습니다.
이창동 감독 특유의 묵직한 연출 스타일에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이라는 캐스팅, 그리고 개봉 전 베니스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이라는 이력이 입소문을 탄 결과로 보입니다. 베니스 심사위원대상은 베니스 국제 영화제의 공식 경쟁 부문에서 황금사자상(최우수작품상) 다음으로 높은 상입니다. 이 정도 권위라면 영화 팬이라면 그냥 지나치기 어렵죠. 저도 차트에서 이름을 보자마자 눈이 멈췄습니다.
반면 <인턴>은 같은 추석 시즌 한국 영화 TOP3의 기대를 안고 16일에 가장 먼저 개봉했음에도 세 작품 중 유일하게 아직 100만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누적 78만 명.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2015년 원작이 국내에서 유독 큰 사랑을 받았고, 김도영 감독은 <만약에 우리>로 비평과 흥행을 동시에 잡은 바 있어 기대감이 높았는데, 결과는 좀 다른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리메이크 작품의 흥행 공식이 원작 인기와 항상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걸 이번에도 확인하게 됐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오디세이 — 8월 개봉작이 아직 3위인 이유
박스오피스 상위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례적인 존재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입니다. 8월 개봉작이 9월 말 차트에서 아직 3위를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제가 직접 봤는데 상영 시간 내내 IMAX 특유의 압도감이 대단했고, 그게 재관람 수요로 이어지는 게 이해됐습니다.
한국에서만 누적 1,188만 관객을 동원했고, 전 세계 흥행은 17억 5천만 달러를 기록 중입니다. 놀란 감독의 역대 최고 흥행작 타이틀을 자신의 전작들로부터 스스로 빼앗아온 셈입니다. 1,200만 관객 달성까지 앞으로 12만 명이 남은 상황이라, 이 레이스가 어디서 마무리될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롱테일 흥행(Long-tail), 즉 개봉 초기가 아니라 입소문과 재관람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관객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흥행 패턴이 <오디세이>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추석 연휴에도 이 작품을 선택한 관객이 적지 않았다는 뜻이고, 그게 신작들 사이에서 3위를 지키는 힘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치이카와 극장판 예매율 1위 — 이게 단순한 수치가 아닌 이유
오늘(30일) 자로 극장에 출격한 신작들 중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이 실시간 예매율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숫자를 보고 솔직히 반가웠습니다. 아이와 문구점에 가면 치이카와 스티커나 캐릭터 상품 코너 앞에서 한참을 멈추는 게 익숙한 풍경이었거든요. 아이가 캐릭터 이름을 하나씩 물어보며 귀엽다고 연신 웃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 주말에는 포스터라도 같이 보러 극장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습니다.
예매율이란 아직 개봉 전 또는 개봉 초기에 미리 티켓을 구매한 비율로, 실제 관객 수와 달리 관람 의향의 선행 지표로 해석됩니다. 그러니까 치이카와 극장판의 예매율 1위는 지금 당장의 관객 수가 아니라, 이 작품을 보러 가겠다고 이미 결정한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이 흐름이 흥미로운 건, 이런 예매 수요가 단지 캐릭터 인기만으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캐릭터 굿즈를 좋아하는 아이와 함께 극장에 가려는 부모의 결정이 실제 예매로 전환되는 과정, 그게 수치로 나타난 겁니다. 제 경우도 다르지 않고요. 박스오피스 차트만 봐서는 이 맥락이 잘 안 보이는데, 예매율과 함께 보면 왜 이 작품이 지금 이 순간 화제인지 이해가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암살자들이 타짜4보다 관객이 많은 이유가 뭔가요?
A. 추석 연휴 특성상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았고, 이 층에서 <암살자들>이 더 많은 선택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타짜> 시리즈는 도박·성인 소재 특성상 가족 관람에는 다소 거리가 있고, IP 팬덤의 집중 관람은 연휴 이후 평일에 더 도드라졌습니다. 다만 연휴가 끝난 28일 월요일에 타짜4가 하루 1위에 오른 것도 이 맥락입니다.
Q. 오디세이는 8월 개봉인데 왜 아직 순위에 있나요?
A. 롱테일 흥행 덕분입니다. 한국 누적 1,188만 관객이라는 압도적인 수치와 IMAX 재관람 수요가 꾸준히 유입되고 있습니다. 9월 말에 신작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3위를 지키는 건 이 작품이 그냥 지나가는 흥행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Q. 가능한 사랑이 스크린이 적은데 4위인 이유는요?
A. 이창동 감독의 작품에 베니스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이라는 권위가 더해져 영화 팬들 사이 입소문이 빠르게 퍼진 결과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임에도 제한 상영을 택한 점이 오히려 희소성을 높였고, 적은 스크린 수에도 불구하고 단위 스크린당 관람률이 높게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Q. 치이카와 극장판 예매율 1위가 실제 흥행으로 이어질까요?
A. 예매율은 관람 의향을 보여주는 선행 지표이기 때문에, 실제 흥행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다만 예매율 1위가 곧 박스오피스 1위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경쟁작들의 추가 개봉 여부와 주말 관람 집중 여부 등을 함께 봐야 실제 성적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결론
이번 추석 박스오피스를 들여다보면서 느낀 건, 하루의 순위만 봐서는 흐름을 절반도 못 읽는다는 겁니다. 누적 관객 수, 예매율, 스크린 수, 개봉 시기, 관객층 구성을 같이 봐야 왜 이 숫자가 나왔는지 제대로 이해됩니다. 제가 매번 박스오피스를 찾아보게 되는 이유도 그 맥락 읽기가 생각보다 재밌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말 영화를 고른다면, 아이와 함께라면 치이카와 극장판을, 묵직한 연출을 원한다면 <가능한 사랑>을 한 번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어떤 작품이 다음 주 차트에서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그 흐름을 함께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