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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딸아이가 디즈니 공주 영화를 좋아할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일 좋아하는 영화 뭐야?" 하고 물어봤더니, 겨울왕국도 인어공주도 아닌 라이온킹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1994년에 개봉한 89분짜리 애니메이션이 6살 아이의 마음을 이렇게 단단히 붙잡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딸은 공주를 좋아할 거라는 편견
제가 직접 겪어보니, 아이의 취향을 성별로 예단하는 건 꽤 위험한 착각이었습니다. 딸이니까 예쁜 드레스와 왕자님이 나오는 공주 서사를 좋아할 거라고 지레짐작했는데, 우리 아이는 오히려 사자와 하이에나가 뛰어다니는 정글 이야기에 더 열렬히 반응했습니다.
아동발달 전문가들은 이를 '자기동일시(self-identification)' 메커니즘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자기동일시란 아이가 화면 속 캐릭터에서 자신과 비슷한 감정·상황을 발견하고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심바는 어리고, 실수를 하고, 무서움을 느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캐릭터입니다. 6살 아이 눈에는 화려한 공주보다 이런 어린 주인공이 훨씬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이해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자아이는 공주 영화"라는 공식이 당연하다고 여겨지지만, 제 경험상 이건 어른들의 편의로 만든 공식에 가깝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는 어른이 예상하지 못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그걸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제가 얼마나 고정관념에 갇혀 있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영화 속 하이에나, 왜 이렇게 무섭게 생겼을까
요즘 우리 딸은 라이온킹을 보다가 하이에나 장면이 나오면 영화를 멈추다시피 하고 질문 폭탄을 쏟아냅니다. "왜 저렇게 웃는 것처럼 생겼어?", "왜 같이 몰려다녀?", "왜 나쁜 편이야?" 솔직히 처음에는 같은 질문이 반복되니까 슬쩍 대충 넘기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대답을 해주려다 보니 저도 제대로 모른다는 걸 알게 돼서 함께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하이에나는 사회적 동물로, 암컷이 무리를 이끄는 모계 사회(matriarchal society)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계 사회란 암컷이 집단의 위계와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사회 구조를 뜻합니다. 또한 하이에나의 특유한 웃음소리는 단순한 웃음이 아니라 무리 내 의사소통 수단으로, 긴장 상태나 흥분 상태를 표현하는 발성입니다. 무리 지어 다니는 것도 생존 전략의 일환인 셈입니다.
라이온킹의 하이에나 캐릭터는 이런 실제 습성을 영리하게 차용하면서도 스카의 부하로 단순화한 면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하이에나가 청소부 이미지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사자와 먹이 경쟁을 벌이는 정교한 포식자이기도 합니다. 딸의 "왜?" 폭탄 덕분에 저도 한동안 몰랐던 사실을 하나씩 알게 됐습니다.
- 하이에나의 웃음소리 — 공격성이 아닌 무리 간 의사소통 신호
- 집단행동 — 혼자서는 불리한 사냥을 무리로 보완하는 생존 전략
- 모계 사회 구조 — 암컷이 위계를 이끄는 독특한 사회 시스템
- 라이온킹 내 역할 — 스카의 부하로 설정되어 실제 습성보다 과장된 악역 이미지 부여
하쿠나마타타 — 노래 한 곡이 아이를 춤추게 하는 이유
라이온킹을 틀어주면 우리 딸이 가장 먼저 반응하는 장면은 단연 하쿠나마타타(Hakuna Matata) 노래 부분입니다. 이 장면이 나오는 순간부터 소파에서 내려와 거실을 뛰어다니며 따라 부릅니다. 처음에는 그냥 신나는 노래라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찾아보니 이 곡은 음악심리학(music psychology)적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되는 반응이었습니다. 음악심리학이란 음악이 인간의 감정·행동·인지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특히 템포와 조성이 아이의 신체 반응에 직접 영향을 준다고 봅니다.
"하쿠나마타타"는 스와힐리어(Swahili)로 "걱정하지 마"라는 뜻입니다. 스와힐리어는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수천만 명이 사용하는 반투어(Bantu language) 계통의 언어로, 라이온킹의 아프리카 배경과 연결되는 실제 단어입니다. 제가 이 사실을 딸에게 설명해줬더니 "그럼 우리도 하쿠나마타타 하자!"라고 했고, 그날 저녁은 한동안 그 말만 주고받았습니다. 영화 한 편이 이렇게 일상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게 제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제 뭐만 하면 다 하쿠나마타타입니다.
디즈니 공식 발표에 따르면 라이온킹의 음악은 한스 치머(Hans Zimmer)가 작곡을 맡았으며, 하쿠나마타타를 포함한 주요 삽입곡은 엘튼 존(Elton John)과 팀 라이스(Tim Rice)가 작사·작곡했습니다(출처: Disney 공식 사이트).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노래가 아이들을 소파에서 일으키는 이유가 단순한 멜로디 이상의 무언가 때문이라는 걸, 직접 옆에서 보고서야 실감했습니다.
1994년 애니메이션이 지금도 통하는 이유
라이온킹은 1994년 7월에 전체 관람가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했습니다. 30년이 넘은 작품입니다. 요즘 나오는 3D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화면이 낡아 보일 수 있는데, 제가 직접 딸과 같이 보면서 느낀 건 그 단점을 서사가 완전히 덮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심바가 아버지 무파사를 잃고 스스로를 탓하며 도망치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잠깐 목이 메었습니다. 6살 아이도 그 장면에서는 조용해집니다.
아동 정서 발달 연구에서는 서사적 공감(narrative empathy) — 즉, 이야기 속 인물의 감정을 따라 느끼는 능력 — 이 4~6세 사이에 본격적으로 발달한다고 설명합니다. 라이온킹은 죄책감, 상실, 용기, 귀환이라는 감정 흐름을 89분 안에 압축적으로 담고 있어, 이 시기 아이들이 감정적으로 강하게 반응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APA)).
일반적으로 오래된 애니메이션은 시각적 완성도가 떨어져 아이들이 흥미를 잃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제 경험상 이건 꼭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딸은 최신 3D 작품보다 라이온킹을 더 자주 꺼냅니다. 결국 아이가 영화에서 찾는 건 화질이 아니라 감정의 공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티몬과 품바 같은 조연 캐릭터가 웃음을 담당하고, 무파사와 심바의 관계가 감동을 담당하는 이중 구조가 30년이 지나도 유효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라이온킹은 몇 살부터 볼 수 있나요?
A. 전체 관람가 등급으로, 공식적으로는 연령 제한이 없습니다. 다만 무파사가 사망하는 장면이 다소 강렬하게 묘사되기 때문에,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라면 4~5세보다는 5~6세 이후에 보여주는 편이 무난합니다. 제 경우엔 그 장면에서 딸이 조용해지긴 했지만 무서워하기보다는 슬퍼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Q. 하쿠나마타타가 실제로 무슨 뜻인가요?
A. 스와힐리어로 "걱정 없다", "문제없다"는 뜻입니다. 동아프리카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표현으로, 영화 속 노래는 이 단어의 뜻을 그대로 가져와 심바가 과거의 죄책감을 내려놓는 장면에 연결했습니다. 단어 하나가 캐릭터의 심리 전환을 통째로 설명하는 구성이 꽤 인상적입니다.
Q. 라이온킹 실사판과 1994년 원작 중 어느 쪽이 아이에게 더 좋을까요?
A. 일반적으로 실사판이 더 생생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아이의 감정 반응은 1994년 원작이 훨씬 컸습니다. 원작은 캐릭터의 표정 연기가 과장되어 있어 아이가 감정을 따라가기 쉽고, 색감도 더 선명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실사판은 사실적인 동물 묘사 때문에 오히려 표정이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Q. 아이가 영화 보면서 "왜?"를 계속 물어보는데,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까요?
A. 저도 처음에는 반복 질문이 귀찮게 느껴진 적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그건 아이가 장면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이해하려는 과정입니다. 가능하면 "모르겠는데, 같이 찾아볼까?" 하는 식으로 함께 탐구하는 방향이 좋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이에나에 대해 딸과 같이 찾아보다가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웠습니다.
결론
딸이 라이온킹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그냥 귀여운 에피소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같이 영화를 보고, 하이에나 질문에 답하고, 하쿠나마타타를 같이 따라 부르다 보니, 아이가 왜 이 영화에 빠져드는지 제 나름대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서사적 공감, 자기동일시, 음악의 신체 반응 같은 개념을 굳이 알지 못했어도, 아이 옆에서 같이 보는 것만으로 그 과정이 눈에 보였습니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지켜보는 것은 그 아이를 더 잘 알아가는 가장 빠른 방법인 것 같습니다. 관심 있는 분이라면 1994년 원작부터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 30년 전 영화가 지금 아이에게도 통하는지, 직접 확인해보는 게 어떤 설명보다 확실합니다.